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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꾼 헌재판결] 2013년 모욕죄 합헌 결정<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기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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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꾼 헌재판결] 2013년 모욕죄 합헌 결정<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기고>

조유진 소장 2017. 10. 18. 11:15

http://blog.naver.com/with_bubmusa/221117964924

 

“모든 인권 중 가장 민주주의적인 권리가 표현의 자유이며,
진정한 민주사회만이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할 수 있습니다.”
- 프랭크 라 뤼(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듣보잡’이 모욕? “「형법」이 표현의 자유 침해한다” 헌법소원

 2009년, 진보논객으로 유명한 J 교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란 뜻의 ‘듣보잡’이라는 인터넷 속어를 인터넷신문사 B 대표를 지칭해 사용하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 등에 올렸다가 모욕죄로 기소되었다.

우리 「형법」 제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312조 제1항에서 “본 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모욕죄를 친고죄로 하고 있다.

모욕은 일반적으로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에 대하여 경멸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말하며,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그것이 구체적 사실이 아닌 때에는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대법원1989.3.14. 88도1397).

이 사건의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경멸적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모욕죄가 성립된다”며 유죄를 판결했고, 대법원도 2011년 12월,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J 교수는 이에 불복해 “해당 법조항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2013년, 헌법재판소도 재판관 5(합헌) 대 3(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다 (2013.6.27. 2012헌바37 전원재판부 결정). 헌재의 판결이 나오자 인터넷상에서 무분별한 혐오표현이나 모욕행위가 자제될 수 있다는 긍정 여론도 있었으나, 개인들의 자유로운 비판 활동까지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반대여론도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도 다수의 합헌 의견 속에서 3명의 재판관은 모욕죄의 처벌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등을 이유로 위헌 의견을 낸 바 있다. 재판관 다수의 의견에 따라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이 되는 경우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 논란도 커지고 있는 만큼 이 사건에 대한 소수의견도 충분히 경청해 볼 만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형법」 상 ‘모욕죄’, 헌재 합헌 결정의 이유는?

먼저 다수의 법관이 합헌 결정을 내린 이유부터 살펴보자. 다수의견이 모욕죄의 위헌성을 판단할 때 초점을 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모욕죄의 구성요건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둘째는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1. 건전한 상식인은 무엇이 모욕인지 예측할 수 있다.

청구인인 J 교수는 「형법」 상 제311조 ‘모욕죄’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모욕죄의 구성요건으로서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데, 모욕죄의 보호법익과 그 입법목적, 취지 등을 종합할 때,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법 집행기관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염려도 없다고 보았다.

헌재가 이같이 판단하는 데는 대법원 판례에서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2003.11.28. 2003도3927)”이라고 하여 모욕죄의 해석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모욕죄를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통상적인 법률 해석 및 적용의 문제라면서, 문제가 된 표현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고려하고, 상대방을 경멸할 의도였는지 아니면 우발적인 것이었는지 여부, 다소 과장된 표현인지 여부, 대화나 토론의 장이 열리게 된 경위와 그 성격, 행위자와 상대방과의 관계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명확성의 원칙 문제는 해소가 된다고 본 것이다.


2. 명예권 보호를 위한 표현의 자유 제한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모욕죄 조항이 개인의 명예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그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면서 명예권과 표현의 자유, 두 기본권의 충돌을 인정한다. 하지만, 기본권 충돌의 해결 원칙에 관한 기존의 헌법재판소 견해를 인용하면서 결국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1991년 당시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충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한 바 있다.

“두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 헌법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충하는 기본권 모두 최대한으로 그 기능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화로운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고, 결국은 과잉금지 원칙에 따라서 심판대상 조항의 목적이 정당한 것인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마련된 수단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와 명예를 보호하는 정도 사이에 적정한 비례를 유지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심사하기로 한다.”(1991.9.16. 89헌마165)


소수의 헌법재판관은 왜 위헌 의견을 냈을까?

그러나 같은 사건에서 박한철·김이수·강일원 3인의 재판관은 법리적인 검토뿐 아니라 모욕죄의 역사적 유래, 최근 세계 각국의 입법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위헌 의견을 내렸다.

1. 타인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해학도 ‘모욕’에 해당될 수 있다.

 

 소수의견은 모욕죄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기준에 의할 경우 타인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경멸적인 내용이 담긴 표현은 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모욕에 해당되어 금지되는 행위의 범위가 무한정 넓어질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또, 다수의견은 모욕 행위의 상대방과 장소 등의 상황을 한정하고 있을 뿐, 처벌되는 모욕의 내용을 구성요건 단계에서 제한하는 것은 아니어서 결국 타인에 대한 ‘비판’도 ‘모욕’에 해당하게 되고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에 저촉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단순히 현실 세태를 빗대어 우스꽝스럽게 비판하는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부정적인 내용이지만 정중한 표현으로 비꼬아서 하는 말, 인터넷 상에서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신조어 등도 모욕죄로 처벌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소수 의견의 입장이다.


2. 처벌하는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심판대상 조항이 처벌하는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표현 행위를 위축시킨다. 모욕죄의 형사처벌은 다양한 의견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건전하게 해소할 가능성을 제한한다. 정치적·학술적 토론이나 의견교환 과정에서 사용된 일부 부정적인 언어나 예민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관한 비판적 표현이 모욕에 해당하여 규제된다면, 정치적·학술적 표현행위를 위축시키고 열린 논의의 가능성이 줄어들어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기능이 훼손된다.

그뿐만 아니라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는 현대민주주의 사회에서 ‘모욕’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잣대로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 되고 정치적으로도 악용될 우려가 있다.

소수의견은 이와 관련하여 미국 연방대법원의 두 가지 판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판례는 말하는 자가 공직자나 공적 인물에 대하여 ‘실제적 악의’를 가지고 ‘허위’ 진술을 한 경우가 아닌데도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여 처벌하는 것은 비판과 자유로운 토론을 막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판례는 ‘평화파괴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는 무례한 말과 욕설’을 처벌하는 규정과 ‘위협적, 모욕적, 명예훼손적, 모독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욕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서도 연방대법원이 그 적용범위가 너무 넓어 헌법상 보호되는 표현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3. 사이버 상의 모욕 표현은 삭제할 수도 있는데, 형사처벌까지 해야 할까?

소수의견은 국가 형벌권의 행사는 가급적 최소화하는 것이 인권보호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는 전제에 서서 단순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의 표현행위에 대하여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광범위한 혐오표현을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욕적 표현은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상당수 악의적 표현 행위는 주로 청소년들에 의하여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를 모두 형벌로 규제하는 것은 청소년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범죄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묻지 마 처벌’은 전 세계적인 ‘비범죄화’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소수의견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경미한 모욕행위에 대하여는 해당 표현물을 삭제하거나, 행위자에 대하여 게시판 접근을 금지하는 등의 대안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까지 형사처벌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4. 외국은 증오·폭력선동 표현 외의 모욕표현은 처벌하지 않는 추세다.

소수의견은 모욕죄가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자유로운 비판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제한다는 이유로 상당 수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폐지되거나 실질적으로 사문화되는 추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모욕죄는 처벌되지만, 법정형은 구류나 과료로 매우 가벼우며(「형법」 제231조), 독일도 모욕죄를 처벌(형법 제185조)하나 실제로 처벌되는 수는 매우 적다.

프랑스는 2000년 이후 차별적 특성의 모욕죄 외의 모욕죄에 대해 벌금형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함께 성별·종교·장애·출신국가 등에 대한 혐오적 표현만 처벌하고 있다(미국 「US Code」 Title 18 Part 1 Section 245(b)(2), 프랑스 「언론법」 제 33조 제3항, 제4항 참조).

소수의견은 이러한 비교법적 고찰을 통해 우리나라 「형법」의 모욕죄 조항이 구체적인 사회적 해악을 발생시키거나 개인의 명예감정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표현뿐 아니라, 「헌법」 상 보호받아야 할 단순히 부정적·비판적 내용이 담긴 판단과 감정표현까지 규제할 수 있으므로, 그 규제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모욕죄 유발하는 사회구조 개선이 근본적 대책

2012년 『검찰연감』에 의하면 모욕죄 사건이 2000년에는 1,858건이 접수되어 그중 532명이 기소되었고, 2011년에는 11,839건이 접수되어 그 중 6,260명이 기소된 걸로 나타났다. 11년 만에 모욕죄로 기소되는 인원이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는 사회가 되었을까.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살기가 점점 각박해짐에 따라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소외로 인해 상처받게 된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작은 무례와 멸시에 대해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위의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모욕죄를 징역형의 처벌로까지 다스리는 보기 드문 나라임에도 모욕죄 건수는 폭증하고 있다.

모욕죄나 혐오범죄의 문제는 형사처벌 등 법적 제재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혐오감을 조장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푸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통단절, 개인의 원자화, 경쟁과열로 몰린 사람들이 끊임없이 분노와 증오심을 키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와있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인권조약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의한 기관인 ‘인권이사회’는 사실적 주장이 아닌 단순한 견해표명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다면서 회원국들이 명예에 관한 죄를 ‘비범죄화’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형사처벌은 매우 심각한 경우에만 적용해야 하고, 특히 징역형은 어떠한 경우에도 적절한 형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명예에 관한 죄가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지나친 위축효과를 가져온다면서, 「민법」 상 명예훼손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가능하므로 형사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형법」에서 명예에 관한 죄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이제 우리도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 글 /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