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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꾼 헌재판결] 2000년 “과외금지” 위헌 결정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기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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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꾼 헌재판결] 2000년 “과외금지” 위헌 결정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기고>

조유진 소장 2017. 10. 18. 11:12

http://blog.naver.com/with_bubmusa/221094037945

 

“네가 배움을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끊어 버림과 같다.”
맹자가 두려워하여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익히며 쉬지를 않았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유학자가 되었다.
군자가 이르기를, “맹자의 어머니는 사람의 어머니로서 도리를 알았다”라고 하였다.
『열녀전』


사교육 열풍에 1980년 “과외 전면금지” 단행

지난 7월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위원장 김진표)는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 중 교육과 관련해서는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추진과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통한 ‘고교체제 단순화’ 등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상당히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수능 절대평가, 고교체제 단순화 공약은 우리 사회의 극심한 사교육 경쟁을 완화 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다. 사교육 완화 없이 공교육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고,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사교육은 계속 극성을 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의 뿌리는 매우 깊다. ‘사교육’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1962년이다. 가정교육이나 외국어교습,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습, 취미생활을 위한 각종 교습도 넓은 의미에서 사교육에 포함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교육’ 은 상급학교 입학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과외교습 (개인교습 또는 학원교습)’을 말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사교육 열기는 중학교 입시 폐지, 고교 평준화 실시 등 정부의 입시과열 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1980년 7월 30일, ‘과외 전면금지’ 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7·30 교육개혁 조치). 그러나 과외금지조치는 그로부터 20년 후인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관련 조항의 위헌결정 (헌재 2000.4.27. 98헌가16 등)에서 ①부모의 자녀교육권, ②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③ 부모의 자녀교육권과 국가의 교육책임과의 관계, ④법 제 3조에 의하여 제한되는 기본권, ⑤ 기본권 제한의 한계로서의 비례의 원칙, ⑥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 ⑦수단의 최소침해성, ⑧법익의 균형성에 대하여 판단하고 있다.

①~③까지는 자녀교육권에 관한 일반적 해석을, ④~⑧까지는 관련 법률의 위헌성에 대한 판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조금 복잡하기는 하지만 하나씩 살펴보자.

 과외금지 조항, 헌재는 왜 위헌으로 보았을까?

1.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부모의 천부적 권리다.
헌법재판소는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천부적인 권리인 동시에 부모에게 부과된 의무라고 전제하고,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모든 인간이 누리는 불가침의 인권으로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및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 「헌법」 제37조 제1항에 따른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교육에 관해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관·사회관·교육관에 따라 자녀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권리를 가지며,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다른 교육주체와의 관계에서 원칙적인 우위를 가진다는 것이다. 부모의 자녀교육권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관점은 과외금지가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미리 짐작하게 한다.

2. 국가는 ‘교육받을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자녀교육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권리지만 근대국가가 성립된 이래 모든 나라에서 교육은 국정운영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은 18세기 말 프로이센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이후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우리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는데 이때 ‘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모든 국민에게 능력에 따른 교육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설비와 제도를 마련해야 할 국가의 과제와 아울러 이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약자도 능력에 따른 실질적 평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실현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뜻한
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국민에게는 교육을 받을 권리를, 국가에는 그러한 국민의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를 동시에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헌법」 제31조 제6항은 “학교교육 및 평생 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함으로써 학교교육에 관한 국가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써 국가는 학교제도에 관한 포괄적인 규율권한과 자녀에 대한 학교교육의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3. 학교 밖에서는 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우선한다.
그렇다면 부모의 자녀교육권과 국가의 교육책임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할까?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부모의 자녀교육권보다 국가의 교육책임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구소련의 경우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한 집단주의 교육이론을 바탕으로 공산주의적 인간상 및 도덕규범의 주입을 목표로 하였다.

공산주의적 국가이념하에서 유아기부터 노동을 통해 국가·당·집단에 대한 봉사정신을 함양시키는 것이 구소련 공교육의 임무였다. 이처럼 강력한 국가의 통제하에서 부모의 자유로운 자녀교육권이 인정될 여지는 매우 좁다.

반면, 자유주의 국가들의 경우에는 의무교육과 아울러 의무교육을 거부할 권리까지 인정할 정도로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존중한다. 우리나라도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국가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즉, 헌법재판소는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서 부모의 교육권은 교육의 모든 영역에서 존중되어야 하며, 다만, 학교교육에 관한 한, 국가는 「헌법」 제31조에 의하여 부모의 교육권으로부터 원칙적으로 독립된 독자적인 교육권한을 부여받음으로써 부모의 교육권과 함께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지만,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원칙적으로 부모의 교육권이 우위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학교 밖에서는 부모가, 학교 내에서는 학교와 부모가 함께 자녀교육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의 입장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견해다.

4. 과외교습에 대해 규정한 「학원의 설립·운영법」 제3조는 기본권을 침해한다.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를 규정한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법’) 제3조가 △배우고자 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자녀를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의 교육권, △과외교습을 하고자 하는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행복 추구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5.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 덜어 주려는 입법목적 등은 정당하다.
헌법재판소는 사교육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이미 자정능력이나 자기조절 능력을 상실했고, 이로 말미암아 국가가 부득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므로, 고액 과외교습을 방지하여 사교육 과열로 인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고, 나아가 국민이 되도록 균등한 정도의 사교육을 받도록 하려는 법 제3조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아울러 법 제3조가 학원·교습소·대학(원)생에 의한 과외교습을 허용하되 고액 과외교습의 가능성이 있는 개인적인 과외교습을 광범위하게 금지하는 규제수단을 택한 것은 이 같은 입법목적 달성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보아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했다.

6. 규제의 편의성만 강조하여 금지할 필요가 없는 행위까지 금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교육 받을 권리의 보장이 원칙이고 이에 대한 제한은 예외적이어야 함에도 법 제3조는 오히려 기본권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규율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규제의 편의성만을 강조하여 금지할 필요가 없는 행위까지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7. 과외금지를 통한 공익 보다 그로 인해 초래되는 나쁜 효과가 더 크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법 제3조와 같은 형태의 규제는 사적인 교육의 영역에서 부모와 자녀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 개인적
인 차원을 넘어 국가를 문화적으로 빈곤하게 만들며, 문화의 빈곤은 궁극적으로는 사회적·경제적 후진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법 제3조가 실현하려는 입법목적의 실현 효과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고, 반면에 법 제3조에 의하여 발생하는 기본권 제한의 효과 및 문화 국가 실현에 대한 불리한 효과가 현저하므로, 제한을 통하여 얻는 공익적 성과와 제한이 초래하는 효과가 합리적인 비례 관계를 현저하게 일탈하여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하였다면서 최종적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개인의 교육권을 보장하면서도 사교육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와 국가의 교육책임 사이의 긴장관계를 중심으로 잘 논증해 오다가 갑자기 문화국가 원리를 동원하여 사교육 규제가 문화적 빈곤을 가져오고, 이것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설명하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헌법이 예정하는 교육의 가치는 개인을 국가경쟁력의 수단으로 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헌법 전문에 밝힌 바와 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과외금지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하고자 하였다면 개인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국가의 교육책임보다 우위에 있다는 논리로 일관하는 것이 보다 간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든 이러한 헌재의 결정 이후 사교육은 재빨리 공교육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규모도 급증했다.

금년 초 교육부가 통계청과 공동 실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 2016년 사교육비 총 규모는 약 18조 1000억 원으로 2015년 17조 8000억 원 대비 2300억 원 (↑1.3%) 증가했다. 학교·급별 사교육비 규모는 초등학교 7.7조 원(↑2.9%), 고등학교 5.5조 원 (↑8.7%), 중학교 4.8조 원(△8.2%) 순이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규모는 2007년 22만 2000원에서 2009년 24만 2000원으로 증가하였고, 이후 잠시 감소하였으나 2014년부터 다시 증가하여 2015년 현재 24만 4000원 수준에 있다.

이러한 사교육 열풍의 가장 큰 문제는 부모의 교육수준이나 소득수준에 따라 사교육비 지출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2015년의 경우 중졸 이하 학력의 어머니는 매월 10만 4000원을, 대학원졸 학력의 어머니는 38만 원을 지출하였다.

부모의 소득수준별 지출을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크다. 2015년의 경우 월평균 소득 100만 원 이하 가구에서는 6만 6000원을 지출했지만, 700만 원 이상인 가구에서는 42만 원을 지출하였다.

이는 부모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자녀에게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향후 우리 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원칙적으로 자녀교육에 있어 부모의 권리를 인정한 헌재의 판결은 정당하다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개인의 교육권을 보장하면서도 사교육 열풍을 잡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교육과 학력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의식풍토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를 위한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졸업장이 없더라도 능력 있고 성실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지며, 학벌에 의한 불합리한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글 /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