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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6년10월 27일, 구혜영 정치부차장][로그인]최순실

조유진 소장 2016. 10. 31. 11:30

경향신문 구혜영 정치부기자께서 본인의 저서 <헌법사용설명서>를 인용해 주신 기사입니다.

 

 

[로그인]최순실

 

1979년 10·26과 2016년 10·26. 아무리 주술정치, 혹은 신정(神政)이라 해도 37년 세월이면 웬만한 악령쯤은 힘을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10·26에 서린 한은 지독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최태민을 구국봉사단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고 했다. 37년 뒤 ‘큰영애’는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에서 “최순실씨는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했다. 10·26은 박정희 스스로 세웠다고 믿었던 나라를 망가뜨린 최태민, 그 최태민의 악령을 박정희 영(靈)이 거둬버린 날이다. 그리고 아버지 박정희, 딸 박근혜는 ‘최태민’이란 나쁜 영과 그 영을 37년 동안 운반해 온 최순실에게 끌려와 마주 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난히 원칙을 강조한 지도자다. 정치 입문 후엔 “큰 권력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지만 정작 큰 권세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당사자”, 정치 입문 전엔 “불의와의 타협은 자기를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2인자 때도 1인자에게 굴하지 않았던 정치를 했던 탓일까, ‘나를 지켜줄 무기는 헌법밖에 없다’고 믿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4년차, 2016년 10월26일은 청와대 밖 비선 실세가 헌법을 중단시킨 날이다. 대한민국은 국가 등기부등본을, 나와 우리 모두는 주권문서를 잃은 날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식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대통령은 선서문처럼 헌법이 부여한 권력만 행사할 수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한다. 민주공화국은 특정세력과 파벌에 지배받지 않고 공공선을 위해야 한다는 ‘비타협적’ 사상이기도 하다. 헌법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까닭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헌법 1조부터 지웠다. 권력 사유화를 서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국가권력을 비선 실세에게 통째로 넘겼다. 비선 실세는 외교, 남북관계, 인사, 대통령 연설까지 쥐락펴락했다. 대통령이 공적인 권력의지를 갖는다면, 권력의지를 내면화한다면 권력을 절대 사유화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누가 진짜 대통령인지 가릴 수 있는 대통령실명제를 도입해야 할 판이다.

우상화 정치도 멈추지 않았다. 최태민은 ‘박정희교’에 집착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우상화에 빠졌다.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는 것도 스스로 군주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임을 부정한 게 아니고 무엇인가. 과거 로마 공화정 당시 한 부자가 기근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했다. 하지만 로마 원로원회의는 임시독재관을 임명해 부자를 처형했다. 행여나 우상화가 공화정을 파괴할지 모른다고 우려해서다. 우리는 로마 공화정보다 못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신정(神政) 37년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힘없는 시민들이 권력과 맞서라고 있는 게 헌법이다. 기본권은 더더욱 그렇다. 약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전체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없다. 지도자는 기본권을 최대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그런데 물대포라니….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은 저서 <헌법사용설명서>에서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는 목적 달성에 필요한 수단의 정도가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초과하면 안된다. 비례(과잉금지)의 원칙이다. 소 잡는 데 쓰는 칼을 모기 잡는 데 쓰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동업자가 없어서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없다고, 권력 사유화가 없는 게 박근혜 정치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박 대통령은 내가 5년만 맡아달라고 한 위임장을 제멋대로 없앴다. 존엄도 넘겼다. 도대체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사라진 내 주권문서를, 국가 등기부등본을….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272103015&code=990100#csidx4e4f670564813a7a7171e0fcb9d7e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