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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용설명서 : 공화국의 징표(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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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용설명서 : 공화국의 징표(1)

조유진 소장 2017. 11. 7. 21:41

첫째, 국가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처럼 운영된다면 그 나라는 공화국이 아니다.

국가는 진정한 공화주의적 사유가 살아 있던 인류의 고대사회가 무너진 이후 오랫동안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 소유물이었다. 국가가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근대 입헌주의국가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따라서 햇수로 따지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300년밖에 안 되었다. 국가가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라는 생각이 공식적으로 승인되기까지 인류는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국가가 특정인의 소유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왠지 국가에는 한 사람의 주인과 그를 둘러싼 주체 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주권 문서인 헌법이 발효 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 속에서 국가는 여전히 지도자와 주체 세력이 필요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왜 내가 누군가의 지도에 따라야 하는가? 왜 나와 내 가족이 타인그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의 결정에 복종해야 하는가? 그것이 노예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노예적 삶을 강요하는 구체제를 전복하고 세운 나라가 공화국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소유자는 국민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대의기관은 국가를 소유한 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한시적으로 고용된 공무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국가를 사적 소유물로 취급하거나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월권이다. 만약 어떤 대통령이 자신의 업무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건방진 생각이다. 물론 대통령은 혼신을 다해서 업무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국가의 운명을 짊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에게 고용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국가의 운명을 짊어졌다는 엄청난 사명감은 얼핏 숭고해 보이지만 바로 그와 같은 과대망상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불행해졌다. 사명감은 쉽사리 국가에 대한 소유 의식으로 변질되며, 거기서부터 모든 부정과 비리가 발생하고 헌법 체계보다는 측근으로 구성된 비선 조직에 국정 운영을 의탁하게 된다. 이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들 대의기관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들, 즉 가족, 참모 그룹, 친인척까지도 국가를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처럼 주무르려고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중에 예외 없이 발생한 측근 및 친인척의 비리는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이 우리나라를 자기들의 사적인 소유물로 생각했다는 반증이다. 그런 환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출세로 생각하는 반공화국적 사고에서 빚어진 일이다.

 

정치 지도가가 되었을 때 가지게 되는 무한한 권력과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선민의식이 결합되어 마침내 권력을 사유화하는 행태, 큰 부자가 되었을 때 부를 이용하여 투기를 일삼고 경제적 약자를 더욱 착취하는 행태, 그것이 우리 공화국 정신을 갉아먹는 주범이다(김동훈, 2010: 131).

 

공화국에서 책임 있는 지위를 맡는다는 것은 봉건시대의 출세입신양명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진정한 공화국이라면 아무도 자진해서 공직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공화국에서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달콤한 출세가 아니라 곧 엄청난 개인적 불이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화국에서는 공직자와 그 주변인들이 감히 국가의 소유자로 행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들을 완전히 발가벗겨야 한다. 예를 들면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 전에 재임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할 측근, 친인척의 명단과 그들의 재산 보유 현황을 포함한 자세한 신상 정보를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관리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일정한 공직에의 취임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일체의 공개적인 정치적 언동을 금지해야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친인척과 측근에게는 불행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입는 일신상의 불이익은 대통령 본인이 누리는 헌법적 권한과 국가로부터 합법적으로 제공받는 퇴임 전후의 각종 특혜에 의해서 상쇄된다. 대통령의 측근, 친인척이 대통령의 후광을 이용해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어야 비로소 공화국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을 예로 들었지만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공화국에서는 국민의 선거에 의해서 임명되고, 국민의 세금으로 부양을 받는 모든 선출직 공무원과 그 주변인은 항상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화국을 구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공화국의 기강을 세우지 않는다면 선출직 공무원과 그 주변인에 의한 도둑질은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며 국민의 주권자로서의 지위는 계속해서 침해될 것이다.  (헌법사용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