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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꾼 헌재판결] 2001년 ‘검찰의 공권력 남용’ 위헌 확인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기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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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꾼 12가지 헌재판결 (7)
2001년 ‘검찰의 공권력 남용’ 위헌 확인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 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이해와 신뢰를 얻어 내는 믿음직한 검사, 스스로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 「검사선서」 중에서
11개월 동안 거의 매일, 총 270차례 증인을 소환한 검찰
정 □□씨는 1998.9.19. 사업가 이 ○○씨로부터 서울시장 등 공무원에게 사업편의를 위해 청탁을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4천만 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알선수재)로 기소되었다. 공판 과정에서 정 씨는 검사가 작성한 이 ○○ 씨의 진술조서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검찰은 이 씨를 검찰측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은 이 씨가 진술내용에 대한 번복 없이 법정에서 증언한다는 다짐을 받고, 변호인들이 이 씨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 씨가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을 할 때까지 약 11개월 동안 무려 270차례나 검찰청으로 소환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씨의 증인신문기일에도 검사실로 소환하여 법정에 출석하지 못하도록 했고, 심리적으로 억압을 받은 이 씨는 증언할 방향을 정하지 못해 신문의 연기를 구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에 정 □□ 씨는 검찰이 이 ○○ 씨를 거의 매일 소환하여 진술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협박·회유하거나 법정에 출석시키지 않아 재판진행을 막는 등으로 자신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1999.8.23.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제1항은 “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 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의 공권력 남용, 헌재는 어떻게 판단했을까?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 제1의 개혁과제는 다름 아닌 ‘검찰 개혁’이다. 국민 여론 역시 이번에는 반드시 검찰개혁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다.
수사권,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를 독차지하고 있는 검찰조직은 자유민주국가 중 오로지 한국밖에 없다. 한국은 원산지인 일본에서조차 이미 사라진 군국주의 검찰시스템을 해방 이후 지금까지 거의 변함없이 이어 오고 있다.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했던 군사정권이 정권안보의 첨병으로 검찰조직을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검찰조직은 막강한 권한을 무기로 수많은 인권침해와 도덕적 해이를 가져왔고, 공정해야 할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검사’들의 발호를 불러왔다. 그동안 검찰개혁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대 정권의 부정방지위원회(김영삼 정부), 부패방지위원회(김대중 정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노무현 정부)를 통한 검찰 견제 시도는 검찰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도 지금까지 9차례 시행되었지만 짧은 수사기간, 정권의 비협조적 태도로 인하여 이렇다 할 수사성과를 거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독재정권을 지나 민주화 이 후에도 검찰조직은 ‘잡도리’ 했던 독재권력이라는 ‘천적’이 사라진 틈을 이용해 오히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조직이기주의를 키워 왔다.
위 검찰의 공권력 남용 위헌확인 사건(헌재 2001.8.30. 99헌마496) 또한 검찰이 그동안 얼마나 오만하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무절제하게 공권력을 남용하며 국민의 인권을 침해해 왔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였을까.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검찰의 행위가 청구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를 침해한다고 결정하였다.
『 ‘공정한 재판’이란 법관으로부터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적법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재판을 의미하며, 공개된 법정의 법관의 면전에서 모든 증거자료가 조사·진술되고, 이에 대하여 검사와 피고인이 서로 공격·방어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는 재판을 받을 권리도 그에 파생되어 나온다.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검찰)은 청구인측(정 □□씨의 변호인)에서 이 ○○씨의 검찰 진술을 번복시키려고 접근하는 것을 예방·차단하기 위하여, 또는 이 ○○에게 면회, 전화 등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자주 소환한 사실이 있음을 자인하고 있다. 그러나 증인은 검사와 피고인 양쪽이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법관의 면전에서 조사·진술되어야 하는 중요한 증거자료의 하나로서 비록 피청구인만의 신청에 의하여 채택된 증인이라 하더라도 그는 피청구인만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그가 경험한 사실대로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피청구인이든 정□□씨든 공평하게 증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검사와 피고인 쌍방 중 어느 한 편이 증인과의 접촉을 독점하거나 상대방의 접근을 차단하도록 허용한다면, 이는 상대방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구속된 증인에 대한 편의제공 역시 일방당사자인 검사에게만 허용된다면, 그 증인과 검사와의 부당한 인간관계 형성이나 회유 수단 등으로 오용될 우려가 있고, 또 거꾸로 그러한 편의의 박탈가능성이 증인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므로, 접근차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정한 재판을 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오늘날 재판절차는 상대방에게 예상하지 못한 타격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로 하고 있다고 할 것인데, 만약 증인의 증언 전에 일방 당사자만이 접촉을 독점하고 상대방의 접촉을 제한한다면, 결국 상대방이 가하는 예기치 못한 타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되어,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의 원칙’에도 반한다.』
검찰의 자의적 검찰권 행사로 인한 헌법소원 다수 청구돼
이 사건은 검찰 스스로 ‘진술 번복을 막기 위하여’, ‘증인에게 편의 제공을 위하여’ 소환을 남발했음을 시인하고 있듯이, 헌법적 감수성이 결여된 검찰조직의 오래된 관행이나 문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검찰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검찰권 남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경종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예를 들면 법원이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를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이를 거부한 사례에서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검사의 거부행위는 피고인의 열람·등사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헌재 2010. 6. 24. 2009헌마257).
이 밖에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유예처분에 대하여 피의자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청구인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이 침해되었다며 인용한 사례는 지금까지도 빈발하고 있다(헌재 2013.9.26. 2012헌마562, 헌재 2017.4.27. 2016헌마922 등).
그렇다면 이처럼 자의적 검찰권 행사에 좀처럼 제동이 걸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87년 개헌으로 현행 헌법이 시행된 이후 형사 사법절차 개선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 결과 무죄추정의 원칙, 영장주의, 고문금지, 접견교통권, 구속체포이유 고지의무, 진술거부권 등은 비교적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검찰 권력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치검찰의 오명이다. 가장 신뢰받는 집단이어야 할 검찰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좌우될 수 있다는 의심은 헌법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측면에서 검찰도 예외일 수는 없다. 오히려 정치적 중립성이 가장 강하게 지켜져야 하는 곳이 검찰이다. 그러나 지난 정권에서도 국민들은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되는 사례를 지켜봐야 했다.
공수처 신설, 수사권·기소권 분리 등 검찰개혁을 위한 과제들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찰권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검찰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이 존재할 때 비로소 검찰개혁이 지속적이고 발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야 정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약칭 공수처)’의 신설을 제안하고 있다. 공수처와 같은 권력형부패 전담 수사기관은 싱가포르나 뉴질랜드와 같이 반부패지수가 높은 나라들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여기서 고위공직자의 범위는 국회의원, 법관 및 검사, 차관급 이상의 공무원 및 「국가공무원법」 제2조의2 고위공무원단,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실 2급 상당 이상의 공무원, 지방자치 단체장, 교육감, 준장 이상 장성,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공무원, 「공직자윤리법」 제3조 제1항 제12호에 따른 공직유관단체의 장으로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를 말한다.
다음으로 검찰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미국과 같이 지방검찰청 검사장에 대한 주민 직선제를 통해 검찰이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복으로서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다수 국가들도 지방의회가 그 지역의 검찰사무 담당기관의 구성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검찰의 독무대였던 법무부를 ‘문민화’하고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시키는 것도 적극 검토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검찰은 법무부 소속 기관이면서도 검찰을 위해 법무부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자격요건을 명시한 법무부의 직책 63개 중 33개를 검사가 맡을 수 있고, 그 중 22개 직책은 오직 검사만 맡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반직 공무원이 맡을 수 있는 직책이 11개 있지만 그나마도 교정본부장과 정보화담당관을 제외한 나머지 9개 직책을 모두 검사들이 차지해 왔던 것이다.
이 같은 순혈주의는 정권과의 유착이라는 폐해를 낳는다. 법무부를 통해서 정치권력과 이어지고, 정치권력은 법무부를 가교로 삼아 검사들과 결탁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어 온 것이다. 악순환은 검사의 청와대 파견근무를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이 같은 관행을 끊기 위해서는 검찰청을 법무부에서 독립된 외청으로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끝으로 검찰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 검찰은 자체수사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행사한다.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기소 여부도 검찰이 독단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수 있다. 독일 검찰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기소에 대한 검사의 재량권이 없는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기소법정주의하에서는 기소하기에 충분한 객관적인 혐의가 있을 때는 반드시 기소를 해야만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에 대해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소지나 기소를 담당한 검사가 수사내용을 숙지하지 못할 우려 등의 비판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검사가 기소권을 가진다면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의한 위법사항을 적발할 수 있으므로 인권침해가 방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나 다수 국가기관으로 수사권이 분산되면 수사기관 상호간의 견제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인권침해 우려는 크지 않을 것이라 본다. 수사권이 분리되면, 법원의 유무죄 심증 형성을 공판심리에 의해야만 하 는 ‘공판중심주의’가 확립되어 검찰은 공소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위 헌법소원 사건에서 검찰의 무리한 증인소환 역시 공판중심주의가 확립되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공판중심주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강화를 의미하며, 그렇게 되면 극소수의 ‘정치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쥐고 권력을 희롱하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검찰 발전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격무에 시달리며 묵묵히 소임에 전념하는 대다수 검사들의 사기진작과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되어야 마땅하다는데 대다수의 국민들도 동의하고 있다.
■ 글 /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출처] [대한민국을 바꾼 헌재판결] 2001년 ‘검찰의 공권력 남용’ 위헌 확인|작성자 대한법무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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