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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꾼 헌재판결] 2005년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기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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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 제36조제1항)
“생물학적 입장에서의 혈통은 암컷에서 암컷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에 호주제는 자연에 반하는 제도이다.” -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여성계·법학계의 적극적인 호주제 폐지운동, 헌재 판결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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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6조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명백히 남녀차별적인 호주제가 오랫동안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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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는 1923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에서 시행 되던 ‘가(家)’ 제도를 한국에 도입하면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가족법의 개정으로 호적에 기록하는 가족의 범위를 ‘부부와 그들의 미혼자녀’로 축소하면서(3세대 호적금지) 호주제를 없앴다. 호주제는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한다.” 는 제헌헌법 제20조의 결단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 호주제는 호주를 정점으로 ‘가’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유지하고, 이러한 가를 원칙적으로 직계비속 남자에게 승계시킨다. 호주제는 ‘호주와 가족’, ‘호주승계’를 중심으로 한 「민법」상 일련의 법 조항들의 연결망을 형성하는 법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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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는 1952년, 여성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이 거부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변호사로서 남녀평등을 구현하는 대열의 선두에 서게 된 이태영 변호사가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이 변호사는 ‘가정법률상담소’를 열어 여성인권 신장에 노력하는 한편으로 진정과 탄원, 헌법소원을 통해 줄기차게 호주제를 비롯한 가족법 독소조항의 개폐를 위해 평생을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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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법학계의 태두인 김주수 교수를 비롯해 학계에서도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법조계에 이어 법학계가 가세하자 그동안 당연시되었던 호주제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태영 변호사가 뿌린 씨앗이 굳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것이다. 이후 여성계를 중심으로 호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되었지만 엄혹한 군사정권하에서 그 실현은 요원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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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여 1990년 「민법」 중 가족법 부분이 대폭 개정되었다. 이때 호주제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를테면 분묘 등의 승계권과 호주의 상속특권을 없앴으며, ‘가’의 강제적 계승을 위한 ‘호주상속’을 임의적인 ‘호주승계’로 전환하여 포기할 수 있도록 하고, 태아의 호주상속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였다. 호주의 가족부양의무도 없앴다. 요컨대 1990년 「민법」 개정으로 호주의 권한은 매우 빈약해졌고 의무는 전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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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처럼 호주제가 ‘유명무실’해졌다고 해서 그 실체법적 폐해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민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혼인을 하면 친가의 호적에서 ‘파내어’ 시댁 또는 남편 ‘가’의 구성원으로 신분이 전환되었으며, 이혼한 여성이 전남편의 자녀를 양육하면서 재혼을 하면 원칙적으로 그 자녀들은 전남편의 가족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이처럼 호주제는 신분관계의 변화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하거나 또는 방해함으로써 여전히 개인의 인격 발현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법」 개정 이후에도 호주제 폐지 운동은 지속되었다. 1999년 여성단체연합 주도로 ‘호주제폐지운동본부’가 발족되고, 유엔 인권이 사회에 호주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하여 폐지권고 결의를 이끌어 냈다. 2000년에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발족되어 호주제 폐지 입법을 국회에 청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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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초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호주제 폐지를 ‘12대 국정과제’로 선정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법무부는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마침 이 무렵 호주제 위헌제청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된다. 그 결과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는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제778조와 제781조 제1항 일부분, 그리고 제826조 제3항 일부분에 대해 재판관 9명의 6: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2005.2.3.2001헌가9~15, 2004헌가5 병합)을 내린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달 뒤인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였다. 개정된 「민법」은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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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남녀차별” 호주제는 ‘헌법불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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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아래에 열거한 이유로 호주제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다만, 호주제를 당장 폐지할 경우 신분관계를 공시하고 증명하는 공적 기록에 큰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새로운 호적 정리체계를 마련할 때까지 일정한 시간이 소요됨을 감안하여 「호적법」 개정 시까지 호주제를 잠정적으로 계속 적용하게 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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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결정이 있은 날로부터 한 달 뒤에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호적법」은 2008년 1월 1일,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은 더 이상 호적을 편제하지 않으며 신분관계의 공시 수단은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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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법은 국가사회의 최고규범이다
「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국민생활의 최고 도덕규범이며 정치생활의 가치규범”이다. 민주사회에서는 헌법을 준수하고 그 권위를 보존하는 것이 기본이므로 가족제도나 가족법도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만약 가족법이 헌법이념 실현에 장애를 초래하고, 헌법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고착시키고 있다면그러한 가족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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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제헌 당시부터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일반적 평등의 원칙을 명시하고(제헌헌법 제8조)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여(제헌헌법 제20조) 근대적·시민적 입헌국가를 건설하는 마당에 종래의 가부장적인 봉건적 혼인질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을 밝혔다. 이후 1980년 「헌법」에서는 양성평등이 혼인관계뿐 아니라 모든 가족생활로 확장되었고, 현행 「헌
법」(1987년 「헌법」)에서는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까지 덧붙임으로써 이제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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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주제는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다
호주제에서는 호주 지위의 승계에서 철저히 남성우월적 서열을 매김으로써 남녀를 차별 취급하고 있다. 즉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할머니와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없을 경우 일시적·보충적으로 호주 지위가 주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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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로 인하여 여성은 혼인 전에는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가’에 속해 있다가, 혼인을 하면 남편의 ‘가’에 입적해야 하고,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의 ‘가’에 소속되어야 한다. 이는 봉건시대의 ‘삼종지의(三從之義)’를 강요하는 것으로 여성을 존엄한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제36조 제1항)에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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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도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상징적·심리적 의미는 매우 중대하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혼인신고 시에 정체성의 혼돈, 상실이라는 경험을 겪는다고 한다. 이를 통해 혼인한 여자는 출가외인으로 내면화되고, 가족관계에서 시댁과 친정이라는 이분법적 차별구조가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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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주제는 자녀의 신분관계에도 차별적 요소를 강요한다
호주제 하에서 자녀는 태어나면 당연히 아버지의 ‘가’에 입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자녀를 부계혈통만을 잇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으로 자녀가 부모 모두의 혈통을 잇는 존재라는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순리에 반한다. 또한 아버지에 비하여 어머니의 지위를 낮게 둠으로써 부당히 차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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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 대한 가족법적 규율은 첫째로 자녀의 복리향상에 그 목적이 있고, 둘째, 가능한 한 친자관계 당사자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자녀를 아버지의 가에 입적하게 함으로써 부모가 이혼하는 경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즉, 부모 이혼의 경우 어머니가 자녀의 친권자로서 양육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자녀는 여전히 아버지의 호적에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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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양육권을 포기하고 재혼을 하여 자녀와의 교류가 단절되고, 심지어 자녀학대, 성추행, 폭행 등으로 가정파탄의 원인을 아버지가 제공한 경우마저도 여전히 자녀는 아버지의 호적에 편제된다. 이는 오늘날 가족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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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호주제는 개인의 존엄성에 반하는 권위주의적 제도이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인간생활의 가장 본원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다. 우리 「헌법」이 이러한 가족 영역에서 개인의 존엄을 보장하라고 규정한 것은 혼인 및 가족생활에서 개인이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되어야 하고,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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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과 가족생활을 국가가 결정한 이념이나 목표에 따라 일방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민주주의 원리와 문화국가 원리에 터 잡고 있는 우리 「헌법」 상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호주제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은 예외 없이 호주이든, 가족이든 법률상의 가족단체인 ‘가’에 소속되어야 하고,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호주의 지위를 강제로 부여하며, 모든 개인은 가족 내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개체가 아니라 호주와의 관계를 통해서 가족 내의 신분적 지위가 자리매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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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호주제는 혼인과 가족생활 당사자의 복리나 선택권을 무시한 채 남계 혈통 중심의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 형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으로서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제1항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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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 가부장제 완화로 가족관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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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개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가족관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구 「민법」에 의하면 가족은 호주를 기준으로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민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에 입적한 자를 구성원으로 하였다. 하지만 현행 「민법」에서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는 며느리와 사위,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처남, 처제까지 가족에 포함되어 가족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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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부성(父姓) 강제주의도 완화되었다.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원칙으로 하지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협의한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또, 새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길도 열렸다. 이는 친양자제도의 도입으로 가능해졌는데, 친양자제도는 호주제의 폐지로 가족관계의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신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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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양자는 입양된 자녀가 부부가 혼인 중에 출생한 친생자와 법적으로 동일한 신분상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당연히 성과 본도 양아버지 또는 양어머니의 것을 쓰게 된다. 친양자제도가 도입되면서 재혼가정의 고민이 해결되었다. 즉, 과거에는 자녀가 반드시 친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어 재혼가정에서 아내의 전혼 자녀는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사회생활에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친양자 입양으로 자녀에게 새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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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등록부에는 호주를 기록하는 난을 없애고 호주 대신에 본인을 기준으로 하여 출생, 입양, 혼인, 이혼, 사망 등 출생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변동사항을 모두 기록하게 되었다. 또, 배우자, 부모, 배우자의 부모, 자녀, 형제자매 등의 인적사항이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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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의 폐지로 여성이 결혼하더라도 남편의 호적에 입적되는 일은 없어졌다. 대신에 자신의 신분등록부에 배우자의 인적사항을 기재한다. 자녀 역시 아버지의 호적에 들어가는 대신에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부모의 인적사항을 기재하게 된다.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신분변동사항은 본인의 것만 기재되고, 부모 등 가족의 신분변동사항은 기재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의 이혼, 재혼 등 사실 여부가 기재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대폭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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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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